난타에 '갓' 쓴 배우 등장하자…"케데헌 아니냐?" 외국인들 환호성 터진 이유

 "저거 '케데헌' 사자보이즈 아니야?" 공연을 보던 관객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이다. K팝을 넘어 이제는 한국 공연계 전반에 '케이팝데몬헌터스(케데헌)'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뮤지컬, 연극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스며든 K-컬처의 영향력은 한국을 새로운 '공연 관광'의 성지로 급부상시키고 있다. 그 상징적인 변화의 바람은 올해로 28주년을 맞은 대한민국 대표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에서 가장 먼저 감지됐다. 최근 난타는 공연 초반, 전통 부엌을 배경으로 한 프롤로그 장면에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검은 '갓'을 쓴 배우 넷을 등장시켰다. 지난 1일부터 명동, 홍대, 제주 전용관에서 이 장면이 처음 공개되자마자 객석에서는 "와, 갓이다"라는 웅성거림과 함께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동원 연출가는 "원래는 어둡고 조용한 분위기로 시작하는 장면이었는데, 갓을 쓴 배우들이 등장하자마자 관객들이 환호하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며 "국적을 불문하고 '갓'이라는 상징물에 큰 관심을 보이며 공연에 한층 더 몰입하는 것이 느껴진다"고 현장의 열기를 전했다.

 

이러한 K-컬처의 영향력은 언어의 장벽이 없는 '난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사가 있는 대형 뮤지컬과 연극 시장에서도 외국인 관람객의 폭발적인 증가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외국인 대상 티켓 예매 플랫폼 '인터파크글로벌'의 판매 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외국인 구매 건수는 전년 대비 뮤지컬이 40%, 연극은 무려 95%나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글로벌 팬덤을 거느린 K팝 스타가 출연하는 작품에 관객이 집중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며, '최애'를 보기 위해 한국을 찾는 팬들의 발길이 공연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 상반기 외국인 예매 상위 5개 뮤지컬은 '알라딘', '웃는 남자', '지킬앤하이드', '팬텀' 등이었으며,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라이선스 공연인 '위키드'에도 상당수의 외국인 관객이 몰렸다. 이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쇼핑이나 맛집 탐방을 넘어, 수준 높은 공연 관람까지 즐기려는 '연계 수요'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위키드' 서울 공연 관계자는 "체감상 외국인 관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원어로 진행되는 내한 공연이 많아지면서 언어 장벽 없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찾아온 외국인들이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알라딘' 부산 공연 역시 일본 등 다양한 국적의 관객들로 붐볐으며, 부산 인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관람 수요도 상당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싱가포르에서 친구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는 한 20대 여성 관객은 "오직 '위키드'의 셰리든 애덤스 배우를 보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밝혀, 특정 배우나 작품이 강력한 '목적 관광'의 동기가 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외국인 관객의 대규모 유입은 한국 공연 시장의 체질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 10여 년 전만 해도 '난타' 관객의 70%가 단체 관광객이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이제는 개별 자유 여행객(FIT)이 80%를 차지할 정도로 관람 패턴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전 세계 각지에서 스스로 찾아오는 개별 관람객의 꾸준한 증가는 공연의 수익성을 개선하는 핵심 요인이다. 이는 뉴욕 브로드웨이나 런던 웨스트엔드처럼 외국인 관광객이 공연 수익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며 '오픈런(공연 기간을 정하지 않고 계속 상연)'을 가능하게 하는 선진 공연 시장의 모델과 닮아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정부와 업계의 움직임도 분주해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공연콘텐츠 외국어 자막 지원 사업' 대상을 작년 2개에서 9개 작품으로 대폭 확대했다. 더 나아가 오는 10월부터는 전용 인공지능(AI) 스마트 글라스를 착용하면 눈앞에 원하는 언어의 자막이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스마트씨어터' 기술을 본격 도입한다. 연극 '불편한 편의점', 뮤지컬 '마리퀴리' 등 9개의 창작 연극·뮤지컬이 이 첨단 기술의 첫 수혜자가 될 예정이다. K-컬처의 바람을 타고 한국 공연계가 질적, 양적 팽창을 넘어 글로벌 스탠다드를 선도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